정해진 진채연구소 기획전시

번역된 명화들 : Translated Masterpieces



2025.04.09 - 04.26

김경아, 김나영, 김미정, 김정옥, 맹지은, 박경화, 박서영, 박소현

박솔란, 장재연, 정학진, 조선희, 최지현, 최지희, 한라희, 홍윤희


번역된 명화들


연구소장 정해진



동서양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겨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선으로 의사소통을 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다. 색을 얻어 칠하고, 표현 방식을 다듬으며 더욱 세련된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렇게 ‘그림의 시대’가 열렸고,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삶을 찬란하게 장식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그림들을 “명화”라고 부른다.


명화는 동영상이나 사진이 등장하기 전에, 오직 인간의 손길과 노력만으로 완성된 예술의 결정체다. 또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유화가 이러한 명화의 시대를 이끌었다면, 동양에서는 “진채(眞彩)”가 그 정점에 올랐다.


진채화는 누에에서 얻은 값비싼 비단 바탕에 보석 가루를 부수어 만든 강렬한 색감을 더해 완성된다. 그만큼 희귀한 재료와 정성이 필요한 기법이기에, 시각적인 아름다움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진채화에는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원시적인 기법을 유지하고 있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엄청난 노고를 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투명한 비단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표현법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으며, 새로운 기법의 개발도 활발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체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번역된 명화들》은 단순한 명화 모사가 아니다. 이는 서양의 명화들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동양화 재료인 진채로 번역해, 전통 기법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실험이다. 이 과정을 통해 현대 진채화가 현재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서양의 명화를 동양의 재료로 그려보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점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재료로 담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모사가 아닌, ‘번역’이라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진채화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전시는 인간이 쌓아 올린 노력의 결정체를 감상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많은 분들이 함께 경험하며, 특별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