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nctuary : 최제이 개인전 

Jay Choi Solo Exhibition



2024. 6. 29 - 7. 20


FLOWY, 흐르는 대로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FLOWY, 유동적인 바람의 결이 시점(視點)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내면과 외면이 역전되면서 시·공간의 자유를 갖췄다. 집과 하늘은 경계가 아닌 하나가 되면서 자유로워지고, 붓질은 그 자체로 ‘흐르는 속성(flowy)’에 주목한다. 최제이의 신작들은 방황하던 자아를 단단하게 붙드는 신호탄과 같다. 뿌리깊은 나무의 가지들이 더욱 자유롭게 흔들리듯, 작가의 오늘은 어제보다 자유롭다. 작품은 거시적 시선과 미시적 시선을 오간다. 작가의 시선 역시 실내와 실외를 가로지르며 마음의 확장으로 연결된다. 시간의 공기를 바람으로 표현한 작가는, 정적인 평면화(프린트)에서 동적인 페인팅(행위)으로 의미를 옮겨오면서 결과보다 과정 자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마음의 결’을 머금고 ‘자유의 흐름’이 되는 것이다.

 

형태에서 벗어난 ‘마음추상(意景)’으로의 길

 

동양미학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닌,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로이 즐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형태에의 집착에서 벗어난 '의경(意景: 의미풍경)'을 통해 표출된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의 요산요수(樂山樂水)의 경지, 이를 바람을 좋아하는 최제이 작가에게 빗댄다면 ‘비물질의 덩어리화=바람추상(Agglomeration of non-materials=Wind Abstract)’으로 귀결된다. 산과 물을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를 구하고자 했던 선인(先人)들의 마음은 ‘자연의 이치에 복잡한 현실을 내맡긴 작가의 마음’과 통하는 것이다. 숲을 소재로 한 이전의 ‘대안적 인상(Alter Impression)’에 드디어 추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상호관계성’에서 출발한 ‘바람의 붓질’은 이제 결과가 아닌 ‘흐르는 대로의 속성’ 그 자체를 표현한다. 작가는 감각과 내면의 혼연일체형 풍경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 행위에 집중하면서, 그림과 작업행위를 일치시키는 ‘마음의 흐름(Mind projected in brush strokes)=FLOWY’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전 작업들이 초현실적 풍경과의 조우였다면, 이번 신작들은 구상(具象)에서 벗어난 ‘진짜 심연(image of a sincere mind)’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판화전공인 작가는 시간을 머금는 ‘페인팅의 붓질’에 과감히 빠져들면서, 페인터(Painter)로서 화면 밖의 실제 바람을 화면 안으로 옮겨온다. 소재의 탈피가 준 자유는 상징적 사물들이 사라지고 나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 붓질(Act of painting)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자, 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철학에의 발견이다. 시간의 흐름이 자유가 되어 흐르고, 그 바람은 행위가 되어 ‘최제이 자신’이 되는 것이다.


참된 나의 발견, 빛과 바람의 기운을 머금다.

 

붓과 일체화된 자아는 색채와 마띠에르(Choice of Colors and Matière)에의 강박을 해체시켜, 순간순간 변화하는 직관의 색을 ‘바람의 레이어’로 확장시킨다. 빛이 아직 완전히 산란되기 전의 동틀 무렵처럼, 작가는 세상의 모든 색이 나오기 직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최제이가 옮기는 바람 덩어리는 그래서 몽글게 몽글게 심신을 치유한다. 색의 스페트럼이 넓어지면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는 저절로 느슨해진다. 영적 이미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되면서, 빛과 바람의 기운까지 머금는 탁월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작가는 “경험되어진 풍경을 마주할 때면, 과거 어느 곳으로 우린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고 고백한다. 회화(繪畫), 그 자유로운 붓질과의 만남은 작가의 가장 본능적이며 내밀한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현실 세계를, 때로는 내면의 뜨거운 에너지를 드러내면서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동적인 흐름으로 가득한 우리가 살아가는 감각적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의 선(線)은 두터운 면(面)으로 작용해 동·서양 미감을 뒤섞는다. 색선(色線)의 감각적 덩어리는 최제이 작가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과정이자, 화면 안에서 비로소 찾아낸 ‘회화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캔버스에 던지기보다, 붓에 마음을 실어 완성한 바람의 에너지는 날 것의 바람 그 자체를 드러내며 감상자와 만난다. 내면의 풍경을 따스한 감성으로 추상화한 최제이의 ‘마음추상’은 이제 복잡한 감정을 다듬고 여름 햇살처럼 우리와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