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Forests : 숲과 숲

최지현 개인전

Jihyeon Choi Solo Exhibition



2025.05.17 - 06.07


숲과 숲 : 겹쳐지지 않는 시간들 안에서


 갤러리헤세드 설에덴

 

최지현 작가의 작업노트에 ‘같은 시간을 산다고 해서 같은 풍경을 갖는 것은 아니다.’ 라는 문장이 있다. 사실 너무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환경과 감정 속에서 각자의 하루를 빚어낸다. 그 하루의 조각들이 모여 나를 만들고, 나만의 숲을 완성한다. 여기서 숲은 장소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축적된 정서의 지형이다.

 

최지현 작가의 개인전 《숲과 숲》은 그 축적의 방식을 묻는다. 작가는 시간을 따라 그리지 않는다.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감정이 침전된 상태로 존재한다. 냇가, 골목 어귀, 아카시아 향은 장면이 아니라 감정이 머문 흔적이다. 사실 그녀의 회화는 재현보다 감각에 가깝다. 동양화의 틀을 빌리지만 전통적 구도나 관습적 붓질에서 벗어난 화면은 형상이 아닌 감정의 밀도로 구성되며, 말보다 느리고 형상보다 불분명한 결을 따라 움직인다. 감정을 위해 빌린 형상은 구체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감정의 상태로 존재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품 속 펭귄, 계절에 맞지 않는 꽃, 비현실적인 장면은 구체적인 서사를 갖지 않는다. 이들은 상징이 아니라 감정의 파편으로 작동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조각들이 화면 위에 머무는 방식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게 한다. 전시는 하나의 이야기 대신 각자의 기억을 호출한다. 《숲과 숲》은 병치된 감정의 자화상이다. 하나는 작가의 내면에서 비롯된 숲이고, 다른 하나는 관람자의 기억 속에서 자라난 숲이다. 닮아 있지만 겹쳐지지 않는 두 풍경은 같은 시간 아래 서로 다른 정서의 층위를 보여준다. 그 틈에서 우리는 비로소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작가의 회화는 설명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는 장소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자신만의 숲을 마주하게 하는 풍경. 그리고 어쩌면 영영 완성이 없는 풍경. 《숲과 숲》은 감정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회화로 제안한다.




숲과 숲


작가 최지현



같은 시간, 다른 환경을 가진 숲은 저마다의 풍경을 지닌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각기 다른 환경과 감정 속에서 하루의 조각을 만들며 저마다의 모양새를 갖춘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은 오늘의 나를 완성하는 수많은 조각 중 하나가 된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환경’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감정, 주변 사람, 살아가는 공간이 서로 다르기에, 단지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같은 듯 분명 다른 시간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에는 향이 있고, 색이 있고, 감정이 있다.


어릴 적 단층짜리 작은 집에 살았을 때. 냇가 위를 지나는 작은 다리를 건너고 골목 어귀를 지나면 집에 갈 수 있었다. 반대로 골목 어귀를 지나 커다란 느티나무 옆 작은 다리를 건너면 큰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는데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되었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는 쓰임이 있는 터였다.

못생긴 돌은 고기가 되고, 들풀은 파나 채소가 되어 찌개를 끓일 수 있었다. 어릴 적에는 그 작은 돌멩이까지도 쓰임을 만들어 내는 내가 있었고, 그런 마법을 쓰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 였다.


노을을 등에 지고, 엄마와 달리기 시합을 할 때의 작은 다리는 그렇게 클 수가 없었고, 그 커졌던 작은 다리 위에서 엄마는 나를 이긴 적이 없었다. 한없이 느리고 느렸던 엄마의 달리기와 시간이었다.


그 공터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면 멀리서 저녁 시간이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것은 동화에 나오는 시계와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카시아 향이 진하게 나던 계절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카시아 향을 맡으면 그 때로 돌아간다.


숲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는 속도는 더디고, 고되다. 그런 나무를 수백, 수천, 수만 그루씩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키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은 기쁨과 슬픔, 내 삶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기억은 하나하나 나무처럼 자라난다. 그렇게 채워질수록 나의 숲은 점점 풍성해지고, 결국 그 숲은 곧 ‘나’ 자신이 된다.


멀리서 보면 모든 숲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환경을 가졌다. 숲마다 다른 이야기와 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