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Station No one Remembers : 김재현 개인전

Jaehyun Kim Solo Exhibition



2024. 10. 01 - 10. 22

김재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갤러리헤세드 설에덴


 김재현 작가의 개인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는 작가의 내면적 시선과 자연이 만나 이루어지는 김재현만의 미적 언어를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고(故) 허수경 시인의 시어를 차용한 것으로, 정체된 시간속에서 시인이 느낀 감정과 더불어 종국에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와 경험이 김재현 작가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 전시의 제목으로 선택되었다.


 전시는 작가의 아주 개인적인, 그러나 누구든 한 번쯤 지나쳐 왔을 기억과 감정의 역사를 자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자연이라는 끝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감각을 투영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 시간과 공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깊이 조망한다.


작가의 작업을 분석해보자면 우선,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부터 독특한 미학적 감수성이 드러난다. 김재현에게 자연은 단순한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잠든 무수한 감정과 경험을 포착하는 주체로서 기능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로는 파편화되어 있으며, 관습적인 시각적 언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간다. 이는 마치 자연의 한 순간을 포착해 그 순간의 느낌과 감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그려내는 작가의 태도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현실의 풍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며 그 안에서 발견한 작가 내면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김재현의 작품은 크게 ‘숲 인상’, ‘자연 인상’, 그리고 ‘아카시아 시리즈’로 분류되는데, 이 중 숲 인상은 작가가 다소 개인적인 바운더리 안에 위치한 숲을 마주했을 때 느낀 첫 인상을 그려낸 작품들로서, 인간 김재현이 숲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로 넉넉하다. 숲은 작가에게 일종의 감정의 캔버스이며, 그곳에서 발견되는 색채와 형태는 작가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된다. 한편 자연 인상은 더욱 깊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며 경험한 감각이 담겨있다. 자연의 흐름과 빛의 변화, 바람의 움직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현상들을 다채로운 색채와 섬세한 붓질로 표현해내며, 그 안에서 작가의 감각적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아카시아 시리즈는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가장 내밀하고 집중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군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점묘적인 붓 터치를 통해 아카시아 잎의 평면적인 패턴과 리듬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자연과의 긴밀한 교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작가의 내면적 감정과 기억을 담아내는 하나의 확장된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자연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찰과 성찰을 반영하며, 작품 속에 자연이 지닌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투영한다.


김재현 작가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그는 원근법, 투시법, 상투적인 구도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수많은 붓질과 겹겹이 쌓이는 색채를 통해 자연이 지닌 본연의 모습을 탐구한다. 이는 그의 작품이 자연의 외형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흐름, 감정의 잔상, 그리고 공간의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붓질은 일종의 내면적 사유의 과정으로, 각 터치는 마치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듯한 감각을 전해준다.


김재현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결국 그의 내면을 따라가며 작가가 경험한 자연의 감동과 이야기에 동참하는 행위다. 그 순간, 관람객은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 공간, 그리고 감정과 함께 호흡하며, 작가와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자연의 이미지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전시 공간에서 비로소 완성되어 김재현 작가가 바라는 ‘자연과 관람객의 소통’이 실현되는 순간으로 완성된다.


이번 전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는 이러한 작가의 깊이 있는 작업 세계를 선보임과 동시에 관람객들에게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풍경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며, 미래에 대한 그 만의 의지적 표현이다. 


 




작가노트

김재현

 

자연과 풍경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릴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은 대상이며, 항상 변화하고 새롭습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크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자연(장소)을 처음 마주하고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을 때 그 느낌과 감정을 끝까지 유지 하며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연이 주는 시각적 다양함과 자연스러움, 숲 안에서 보았을 때 와 숲 밖에서 보 모습의 차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빛나는 나무들의 조화를 보며 정서적 감동을 느껴 캔버스에 재현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게 되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이용하여 현장 스케치를 하지만 사진자료는 그 순간(감정을 느낀)을 떠 올리는 역할이 큽니다. 저의 작품은 자연을 그대로 사진처럼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는 자연을 보고 느낀 개인적인 내면의 감정세계와 심리적으로 본 것을 그리는 것입니다.


작품을 크게 나눠 보면 숲 인상과 자연 인상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숲 인상은 자연(숲)을 마주하고 바라보았을 때를 그린 것 이고 자연인상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의 느낌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작가) 만의 시각적 경험에서 본 자연을 그려낸 연작으로, 시각화하기 어려운 인상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추상화된 표현방식도 사용하였습니다. 붓으로 수많은 터치를 중첩시키면서 작업을 해 나갑니다. 저는 자연이 연출하는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 자신이 익혀온 표현법(아카데미즘), 예를 들면 정통구상에서의 원근법이나 투시기법, 상투적 구도 등을 최대한 자제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와 자유로운 방법으로, 규칙을 떠나 셀 수 없을 만큼 중첩되는 붓질과 터치를 통해 작가 자신이 느낀 자연의 인상은 캔버스에 드러냅니다. 은밀하게 스쳐간 온도, 향기, 바람, 느낌, 인상의 재현입니다.


자연의 공간이 주는 정서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최대한 회화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작가 내면의 자연에서 받은 특별한 인상을 강조하는 나의 작품은 새로운 자연의 이미지를 창출합니다. 의식적 터치와 무의식적 터치가 쌓이면서 교차되는 어느 지점, 캔버스 안의 구성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는 어느 지점에서 붓을 멈춥니다. 지극히 개인인 나라는 한 사람이 느낀 감정 등을 표현하였지만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작품을 만든 작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며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오롯이 나의 만족감에 맞추어 그려진 그림은 관람객이 관람하는 순간에 비로소 진짜 작품의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그림이 전시장에서 또 다른 어떤 공간에서라도 관람객의 발과 시선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작품이 되어 그 관람자와 그림을 그린 내가 그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