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llow Dilemma》
2026. 05. 02 - 05. 16
동물들의 시선을 따라, 검은 구멍을 따라
콘노 유키
여기, 동물이 있다. 있는 동물이 구멍으로 들어간다. 동물이 동물을 따라간다. 다른 동물을 만난다. 검은 구멍. 구멍 옆에 구멍이 하나 더 있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땅속을 향한다. 땅속으로 들어간 동물은 모습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동물이 나온다. 덤불이 뒤에 무성하고, 하늘은 펼쳐져 있다. 이 환경 속에 신체 일부만 보이는 동물, 숨어서 지켜보는 동물, 쫓거나 쫓기는 동물이 있다. 동물들은,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기 전에 어딘가를 바라보기나 하는 것일까.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한 종이 아닌 여러 종이, 회화 안에 등장한다. 깃발이 당당히 서 있다—산보다 작지만, 꿋꿋이. 류승주의 회화를 잠시 시선으로 따라가 봤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들이 된다. 우리는 무엇에 의해 용맹하게 달려들며, 무엇에 내쫓기며, 무엇과 어떻게 같이 살고 있을까.
류승주가 그리는 풍경에서 자연과 생명체는 순진함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동물들이 있는 자연에 투영되는 시선은 지배자의 그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연물을 순진하거나 귀여운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는 류승주의 시선은 이들을 화목하게 보지도 않고, 자연을 순수함에 가득 찬 곳으로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여기에는 본래적인 의미의 순수성이 있다. 그러니까 생존 본능에 따라 산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순수성이다. 쫓기면 달아나고, 숨어 있으면 안전하지만 바깥 세상과 멀어지고, 사냥할 때 용맹하게 힘을 발휘하는 모습들이 있다. 사실 자연은 평화롭기만 하지 않은—인간 사회 못지않게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류승주는 인간에게 예쁘기만 한 자연을 묘사하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회화 작업은 인간 사회라는 상황과 설정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동시에 작가가 전공한 ‘동양화’라는 분야, 특히 ‘산수화’에서 자연을 향유하는 태도에 다른 시각을 개입한다.
산수화는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어 느낀 감정을 담은 표현 방식이다. 그런데 동양화에 익숙한 류승주에게, 자연은 심리적 해방감 못지않게 긴장감이 도사린 곳이다. 자연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심미적 대상으로 인지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과 두려움, 바꿔 말해 역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런 긴장감이 류승주의 회화에 담겨 있고, 등장하는 동물들을 통해서 연출된다. 구멍은 산수를 바라보는 시각에 내는 구멍이며, 상황을 발생시킨 힘, 그 이면에 있는 힘을 들여다보도록 사람들의 시선을 유도한다. 동물이라는 대상과 자연을 보는 시선은 포획이나 감시, 혹은 재난의 상황 설정에서 무엇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를 구멍을 통해서 ‘실마리’를 유추하게 하며, 구멍을 통해 ‘꿰(어 )뚫어보게’ 한다. 깃발이 보이는 곳을 따라, 낚싯줄을 따라, 구멍을 따라, 그리고 등장하는 동물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이곳이 긴장에 꽉 차 있는, 무대 연출된 장소로 여겨지게 된다. 류승주의 작업을 볼 때, 우리는 자연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안에서 움직이고 돌아가고 발생시키는 동력이나 인과관계를 상상하게 된다.
동물이 류승주의 회화에 등장한다. 날아오거나, 달려오거나 구멍에서 나타나거나. 그들의 생존 본능에 빗대어 보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구멍을 파고 날아가고, 뛰쳐나가고 싶어 하며, 맹렬하고 씩씩하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류승주가 그리는 풍경은 어디에 있을까. 그가 방문한 장소도 있겠지만, 거기에만 있지도 않다. 회화에는 작가의 심리적 고백이 드러난다. 화면 안에 들어가 보면, 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언제 위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교차한다. 구멍 또한 마찬가지다. 구멍을 판다는 것은 살기 위함과 도망가기 위함이며, 그 중간에서 겨우 버티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류승주의 회화, 그곳은 이상향으로 그려진 자연이 아닌, 류승주가 몸담고 사는 사회이며 그곳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 외/내부를 둘러싼 연결과 긴장은 구체적인 인과관계로 나타나는 대신 불안과 사건의 징후로 온 화면에 퍼져 있다. 구멍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까, 덤불 뒤에 무엇이 있을까. 산을 넘으면 무엇이 보일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영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도 우리는 시선을 보내며 따라간다. 동물들의 시선을 따라, 구멍을 따라.
<나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 직시에 대한 기록
류승주
회화는 자신을 탐구하고 그 궤적을 풀어내는 일이다.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알고, 또 평생을 두고 탐구해야 할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모습을 풍경 속에 대입해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나는 종종 현재의 나를 불완전하게 느낀다. 이 불완전함은 단순히 결핍이나 무력감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담감과 여전히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함께 얽힌 상태에서 생겨난다. 나는 이러한 모순된 감정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그 긴장감이 곧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작업 초기, 풍경 속 자아를 대변하는 사물들은 '텐트'나 '천막'과 같은 가변적 경계의 형태로 나타났다. 얇은 천 한 장에 의지해 외부의 압박을 견뎌야 하는 이 위태로운 안식처는, 아직 단단한 벽을 세우지 못한 미숙한 자아를 상징한다. 텐트는 시선을 차단해 주지만 외부의 소음과 진동을 내부로 고스란히 전달하는 취약한 방어막이며, 매일 미세하게 마모되지만 정작 눈치채기 힘든 우리 삶의 속성과 닮아있다.
이 불완전한 경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중압감이 덮칠 때, 나의 시선은 땅속 깊은 곳인 ‘검은 구멍(블랙홀)’으로 침잠한다. 초식동물의 땅굴에서 착안한 이 공간은 나에게 있어서 늘 망설이며 신중하게 고민하는 성향, 즉 선택 앞에서의 내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선택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외부로부터 안전해지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외부 상황을 전혀 관측할 수 없는 '정보의 단절'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안락함에 혹해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한 밖으로 나갈 것인가라는 갈등은 곧 생존의 결단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딜레마를 뚫고 밖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한 형상이 바로 ‘동물적인 존재’들이다. 화면 속 등장하는 ‘새’를 비롯한 동물들은 블랙홀이라는 정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풍경과 마주하려는 능동적인 자아를 뜻한다. 인물이 아닌 동물을 빌려오는 이유는 개인적인 서사가 관객 개개인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치환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약한 존재로서 풍경의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민하게 세상을 감각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가는 주체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구멍 속에 숨어 있던 자아는 이제 날개를 달거나 야생의 감각을 깨운 채, 불확실한 외부 세계와의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이렇게 마주하게 된 풍경은 더 이상 정적인 배경이 아니다. 나에게 풍경은 매일 미세하게 변하며 인간의 삶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때로는 나를 압박하는 능동적인 주체다. 최근 나의 작업에서 풍경(풀숲)은 정교하게 '위장'된 채 나를 응시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풀숲 너머로 "너 지금 이럴 시간 있어?"라고 묻는 듯한 환청이 들려오고, 그 안에는 나를 감시하는 포식자의 눈빛이나 날카로운 긴장감이 숨어 있다. 여기서 위장은 나의 상태가 아니라, 나를 에워싼 환경(타자)의 태도다. 자아는 이 위장된 풍경 속에서 예민한 '동물적 존재(새)'를 마주하며, 압도적인 시스템의 시선에 정면으로 맞선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내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기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거나 정리된 감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모순된 감정과 순간적인 생각, 이루고자 하는 열망들을 있는 그대로 남긴다. 지울 수 없는 매일의 획을 쌓아 올리는 한국화의 불가역적인 성질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책임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과도 같다.
이러한 기록의 과정을 통해 나는 내면의 단단한 지지대를 구축한다. 화면 위에서 내가 마주한 불안한 모습을 더 이상 블랙홀 속으로 회피하지 않고 직시할 때, 비로소 삶을 살아갈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에게 회화는 내면을 해석하는 방법이자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이며, 동시에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생존의 선언이다.
앞으로도 나는 풍경 속 요소들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구체적인 이야기의 기록으로 발전하길 바라며, 화면의 구성과 리듬, 공간적 관계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며 감정의 변화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자 한다.